2025년 현재, '화폐화'의 범위는 더 이상 물질적인 자산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비물질적이고, 심지어 비계량적인 요소인 '관계'마저도 경제 구조 안에서 수익 창출의 도구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사람 간의 상호작용, 감정적 연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의 활동 등 '자산 아닌 관계'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어떤 방식으로 수익화되고 있는지를 조명해보며, 이로 인해 발생하는 윤리적, 경제적, 사회적 문제점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이제 인간관계조차도 디지털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수익의 원천이 되고 있음을 명확히 인식해야 합니다. 감정의 진정성과 관계의 순수성이 경제적 가치 판단 기준으로 전환되는 시대에, 우리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인간다움을 지켜낼 수 있을까요?
데이터 경제에서 관계는 어떻게 자본이 되는가
2025년 디지털 시대의 가장 핵심적인 자산은 눈에 보이지 않는 데이터이며, 그 중에서도 ‘인간 관계로부터 발생하는 상호작용 정보’는 기업이 가장 탐내는 데이터 유형입니다. SNS 플랫폼은 사용자의 감정 상태, 친구 목록, 대화 빈도, 해시태그 이용 패턴, 심지어는 프로필 방문 이력까지 세밀하게 분석합니다. 이러한 데이터는 개인이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자동적으로 수집되며, 플랫폼의 알고리즘 개선과 맞춤형 광고 정밀도 향상에 직접적으로 활용됩니다.
예컨대 페이스북은 사용자의 좋아요 빈도와 댓글 반응을 종합하여 ‘관계 밀접도 점수’를 계산하고, 이를 바탕으로 뉴스피드에 어떤 게시물을 먼저 노출할지를 결정합니다. 이때 개인의 실제 친밀도보다는, 디지털 상에서 발생하는 상호작용 수치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이러한 점수는 광고주의 타깃 마케팅 정교화에 직접 연결되며, 더 높은 클릭률을 유도해 광고 수익을 극대화하는 구조를 형성합니다. 단순한 친구 추가나 팔로우가 아닌, ‘빈번한 소통’과 ‘정서적 공감’이 데이터 가치로 측정되는 셈입니다.
한편, 틱톡이나 인스타그램의 리커먼데이션 시스템은 사용자의 시청 시간, 공유 횟수, 댓글 참여율 등을 분석하여 ‘사회적 연결망 안에서 어떤 콘텐츠가 더 감정적으로 반응되는가’를 학습합니다. 이 데이터는 콘텐츠 확산 경로를 결정하는 데 핵심 지표로 작용하며, 사용자들 사이의 연결 구조를 수익 창출의 도구로 재구성합니다. 2024년 MIT 미디어랩의 실험에 따르면, 서로 친밀한 관계에 있는 두 유저가 동시에 같은 브랜드 콘텐츠에 노출될 경우, 일반적 알고리즘 노출 대비 2.3배 높은 전환율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인간 간 상호작용은 단순한 커뮤니케이션을 넘어,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의 핵심적인 수익 구조로 편입되고 있습니다.
더불어 관계 기반 데이터는 단순한 B2C 광고뿐 아니라, B2B 영역에서도 폭넓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링크드인의 추천 시스템은 기업 간 파트너십 가능성을 예측할 때 ‘상호 연결된 제3의 네트워크’를 분석하며, 관계망 밀도와 접점의 다양성을 통해 신뢰 가능성을 평가합니다. 이처럼 네트워크 분석은 곧 ‘관계 신용도’를 수치화하는 방식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철저히 수량화되고, 구조화되며, 플랫폼 내에서 반복적으로 거래 가능한 정보로 전환됩니다. 누구와 얼마나 자주 대화했는가, 어떤 주제로 연결되어 있는가, 어느 시점에 서로 반응했는가 등은 모두 개인의 디지털 가치를 결정짓는 주요 지표입니다. 과거 자산은 땅, 건물, 현금처럼 물리적인 것이었지만, 오늘날 자산은 ‘타인과의 디지털 연결 상태’라는 비가시적 지표로 재정의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관계는 더 이상 순수한 인간성의 표현이 아니라, 플랫폼 자본주의 하에서 가장 중요한 수익 원천이자 경쟁 요소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감정노동과 친밀성의 경제적 전환
현대 디지털 환경에서 감정노동은 단순한 직무 수행을 넘어서 플랫폼 중심 경제에서 핵심적인 수익 원천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특히 개인이 주체가 되어 콘텐츠를 생산하고 직접 시청자나 소비자와 소통하는 구조에서는, 감정의 표현과 정서적 교감이 곧 시장에서의 영향력으로 환산됩니다. 이 현상은 유튜브, 트위치, 틱톡,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 등 다양한 매체에서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창작자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거나 재미를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일상과 내면을 노출하며 관객과 감정적으로 밀접한 연결을 형성합니다. 이 유대감은 광고 수익, 유료 구독, 후원 등 실질적인 금전적 수입으로 이어집니다.
예를 들어 트위치 스트리머는 생방송 중 실시간 채팅에 반응하며 시청자 개개인의 이름을 부르고, 개인적인 대화를 나누는 방식으로 친밀감을 형성합니다. 이는 일방적인 미디어 소비를 넘어서 쌍방향적 관계를 형성하며, 이러한 상호작용은 ‘감정적 충성도’를 구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런 정서적 결속은 단순한 재미나 유익함 이상의 이유로 구독자들이 후원하거나 유료 멤버십에 가입하도록 유도합니다. 감정의 교류는 곧 신뢰를 형성하고, 신뢰는 수익으로 전환되는 구조입니다.
2024년 기준, 크리에이터 수익구조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팬과의 정서적 친밀도가 높은 창작자는 콘텐츠 단가가 상대적으로 낮음에도 불구하고 평균 수익이 더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보고서는 '수익의 크기를 결정짓는 요소는 콘텐츠 품질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들과 형성된 감정적 유대감의 밀도'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실제로 일부 유튜버는 정보성 콘텐츠보다 일상 브이로그를 통해 더 높은 조회수와 후원을 얻고 있으며, 이는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핵심이 ‘콘텐츠 내용’보다는 ‘인간관계의 질’에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또한 최근 몇 년 사이 인기를 끌고 있는 라이브 커머스에서는 상품 자체의 품질보다 판매자와 고객 사이의 감정 교류가 구매 전환률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고객은 단순히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에게서 사고 싶다'는 감정적 신뢰와 호감에서 비롯된 결정을 내립니다. 판매자의 말투, 표정, 말간 유머, 고객 응대 방식 등은 감정노동의 대표적인 예시로, 이는 전통적인 세일즈 기술과는 구별되는 새로운 형태의 경제 행위입니다.
이러한 감정 중심 경제는 단지 개인 미디어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브랜드 마케팅 역시 인간적인 접근을 중심으로 전략을 재편하고 있습니다. 2025년 현재 많은 기업은 인플루언서를 통한 감성 중심 브랜딩에 주력하고 있으며, 그들이 제공하는 '인간적 스토리'를 소비자가 브랜드 신뢰의 핵심 요소로 인식하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정서적 연결이 기업 이미지 구축과 고객 유지율을 결정짓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감정은 더 이상 사적인 영역에 머물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수익화되는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개인의 감정 표현은 단순한 커뮤니케이션이 아닌 전략적 자원이 되었고,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친밀함조차도 경제적 변환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디지털화된 환경에서 감정노동은 고객 경험의 중심에 위치하며, 이 과정에서 감정은 자율적 선택이 아닌 '직업적 기술'로 요구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감정을 표현하는 행위가 더 이상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경제적 맥락에서 평가되고 통제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디지털 자본주의에서 관계의 수익 모델화
디지털 자본주의 하에서 ‘관계’는 더 이상 개인적인 경험이나 사적인 소통에 머물지 않고, 명확한 수익 창출 구조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온라인 기반의 서비스들이 급속도로 확대되면서 플랫폼 기업들은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을 철저히 계산 가능한 자원으로 변환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경제적 가치 생산 방식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관계는 ‘구독’, ‘멤버십’, ‘후원’ 등의 이름으로 상품화되고, 이용자는 더 이상 단순한 수용자가 아니라 관계의 생산자이자 소비자가 됩니다.
대표적인 예로 "디스코드"는 본래 게임 이용자 간 소통을 위한 채널로 출발했으나, 현재는 기술 커뮤니티, 음악 동아리, 온라인 스터디, 창작자 집단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용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핵심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관계의 밀도와 지속성이 새로운 경제적 가치로 재편되었으며, 프라이빗 서버에 대한 유료 가입, 고급 기능을 제공하는 부스터 시스템, 참여도에 따른 권한 차등 등은 모두 인간관계를 기반으로 한 구조화된 수익 모델입니다. 단순한 접속을 넘어 ‘어떤 사람들과 얼마나 깊게 연결되어 있는가’가 곧 비용 지불의 이유가 되는 구조입니다.
이 같은 흐름은 창작자 중심의 경제에서도 유사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패트리온이나 한국의 팬딩과 같은 플랫폼은 창작자와 팬 간의 지속적인 정서적 교류를 수익으로 전환하는 메커니즘을 정교하게 설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단순한 콘텐츠 제공이 아니라, '정기적인 상호작용', '독점 커뮤니케이션', '인간적인 교류 경험'입니다. 후원자들은 그 창작자의 콘텐츠에 대한 소비자가 아니라, 관계의 일원으로서 '소속감'과 '참여감'을 구매하는 셈입니다.
2024년 국제 디지털 경제 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정기 구독 후원 시스템을 활용하는 크리에이터의 68%는 콘텐츠 품질보다는 ‘관계의 유지력’을 통해 이탈률을 줄이고 있으며, 충성 후원자들의 재구매율은 4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수치는 단순한 상품 판매가 아니라, 관계 유지를 전제로 한 경제 활동이 더 높은 지속 가능성을 가진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이는 소비가 기능적 효용보다 정서적 만족을 중심으로 재구성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더 나아가 메타버스 환경에서의 관계는 현실과 가상 공간을 넘나들며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고 있습니다. 아바타 기반의 소셜 플랫폼에서는 유저 간의 상호작용이 거래 대상이 되며, 특정 사용자와의 교류 경험이 NFT 형태로 기록되고 판매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유명 가상 인플루언서와의 인터랙션이 토큰화되어 소장 가능한 디지털 자산으로 전환되는 방식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러한 구조는 단지 개인 간의 교류를 넘어서 ‘관계 그 자체의 소유권’을 사고파는 단계에 진입한 셈입니다.
이외에도 브랜드들은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넘어, 소비자와의 지속적인 관계 형성을 전략의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고객 충성도 프로그램, 팬 전용 커뮤니티, 참여형 캠페인 등은 고객이 단순히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와 장기적인 정서적 유대를 형성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관계 중심 마케팅은 반복 구매와 입소문 효과를 이끌어내는 핵심 도구로 자리잡았으며, 이는 곧 지속적인 수익 창출로 이어집니다.결론적으로 디지털 자본주의는 인간관계를 단지 사회적 기능이 아닌 ‘경제적 자산’으로 재정의하고 있으며, 이는 우리가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이제는 단순히 친근하거나 유익한 사람을 만나는 것을 넘어서, '이 관계가 얼마나 수익으로 연결될 수 있는가'가 중요해졌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인간의 상호작용을 수단화하고, 정서적 교류조차 시장 논리로 흡수하는 거대한 변화의 일부이며,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윤리적 성찰이 시급히 요구됩니다.
결론
현재 우리는 인간 관계마저도 경제적 가치로 환산되고 거래되는 현실에 직면해 있습니다. 감정적 교류, 사회적 유대, 친밀성 같은 비물질적 요소들이 디지털 플랫폼 안에서 자산처럼 측정되고, 관리되며, 다양한 수익 구조로 편입되고 있습니다. 관계는 더 이상 사적 영역의 감정적 경험이 아니라, 알고리즘과 시장 구조 안에서 수익 창출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으며, 이는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제기합니다.
디지털 자본주의는 관계를 구조화하고, 이를 상품화하며, 개인 간 정서적 교류조차 경제적 논리로 수렴시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플랫폼 기업의 성장을 견인하는 동시에, 인간다움의 본질을 위협할 수 있는 요소로도 작용합니다. 단지 ‘돈이 되는 관계’에 집중하다 보면, 비경제적 가치의 중요성이 퇴색되고, 진정성 있는 인간관계의 지속 가능성이 저해될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관계를 어떻게 맺고 유지할 것인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윤리적 기준을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수익을 위한 감정의 연출이 아닌, 인간다운 연결의 회복이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어야 합니다. 관계의 화폐화가 불가피한 현실이라면, 이제는 그 과정을 더욱 인간 중심적이고 지속 가능하게 설계하려는 노력이 동반되어야 할 것입니다.